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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지음, <마음사전> (319쪽, 마음산책, 12,000원)

시를 쓰는 저자가 헤아린 마음의 여러 갈래에 대한 설명 모음집이다. 시집도 아니고 잠언집도 아니고 수필집도 아니지만, 글은 때로 시보다 함축적이고 잠언보다 깊고 수필보다 재미나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 책은 같음 혹은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사랑해'라 말하지만, 처음 말하는 '사랑해'와 두번째 말하는 '사랑해'와 그 후로 반복되는 '사랑해'는 다르다. '길고양이가 쓰레기통을 헤집듯, '사랑해'라는 쓰레기통을 헤집다'는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것에는 그 처음에만 '고백'의 의미가 있다. (중략) 한번 '사랑해'라는 말로 붂인 한 쌍의 연인은 '사랑해'라는 말을 난사하면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던져지는 '사랑해'라는 말은 '미안해'와 '고마워'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 (221~228쪽)

처음과 마지막의 '사랑해'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해'들. 그의 표현처럼 '난사된 사랑해'는 포장 위의 리본과도 같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애초에 내용이 없다. 그 내용 없음은 사랑하는 두 사람에 의해 각각의 방식으로 섣부르게, 주관되게, 함부로, 무책임하게 채워진다. (중략) 당신이 소유한 능력을 내가 좀 써먹겠다 싶을 때에도, 당신의 부탁이 오직 귀찮아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싶을 때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도 시치미를 떼며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죄책감을 느낄 때에도,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해서 당신 없는 곳으로 도망가서 한동안 살고 싶어질 때에도, 모든 행동과 말끝에 넌지시 이 말을 덧붙인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거 알지?" 테러범이 폭탄을 상자에 넣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마지막에 리본을 묶듯이 말이다. (226~227쪽)

이처럼 뜨끔한 부분도 있지만, 킥킥대며 웃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걱정은 유대의 힘을 엄청나게 발휘한다. 같은 고민거리를 지닌 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도원결의한다. 해결책이 나오면 안된다. (중략) 대한민국의 모든 주부들이 대동단결하여 바쁜 것은, 자녀 교육과 시댁 이야기와 저녁 반찬 걱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걱정은 속수무책이고 대안이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 (153쪽)

마음이 지을 수 있는 수많은 표정들. 그 표정을 통해 마음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저자는 이 글을 적는 동안 지독하게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머리에 적고 있듯, 두 눈 똑바로 뜨고 무수히 중첩되고 해체되고 얽혀드는 마음의 실핏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위선과 위악'이나 '이해와 오해'의 관계는 이런 고된 작업 끝에 나온 것이다.

위선과 위악 / 위선은 없는 것을 있게끔 하는 포장술이고, 위악은 있는 것을 감추려는 악다구니다. (중략)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선은 나의 식은 사랑과 당신의 식지 않은 사랑의 간격을 메우기 위하여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위악은 나의 식지 않은 사랑과 당신의 식은 사랑을 견뎌내기 위하여 필요하다. (205~206쪽)

이해와 오해 /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182쪽)

이런 류의 책은 독파하는 것이 아니다. 곁에 두고 간혹 펼쳐 음미하며 곱씹거나 거꾸로 내 마음의 표정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들쳐보는 것이 좋다.

*그러고보니 1월 31일, 인디반 모임 날짜를 잘못 알고 나간 강남거리에서 그냥 돌아오기 억울해 들른 교보문고에서 산 책이다.
Posted by 2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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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_anatta 2008/03/1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와 오해'
    서늘한 느낌을 줄 만큼 독한 말인듯 한데...

    이게 진짜 어느 면에서는
    '이해와 오해'에 관한 진실인 것 같아요. -.-;;

    • 2boys 2008/03/12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그거였어요..
      독하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내를 들킨 것 같지만 묘한 쾌감이 있는..

  2. 뎀뵤 2008/03/13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혼자 들른 서점에서 만지작거리다가 놓아두고 나온 책인데.
    이 글을 보니 돌아가서 사 줘야겠네.
    나에게~ ^^;;;

    • 2boys 2008/03/14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뎀뵤닷컴에 있는 '마음이...'글 보구 이 책 생각났는데..
      꼭 사서 봐. 후루룩 읽지 말고 드문드문 봐..^^

  3. 미로속의루나 2008/05/25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고싶다는 묘한 끌림으로 읽게 된 책인데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이었던 같아요.
    읽었던 부분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